모두가 잘 만드는 시대의 다음은 무엇일까
Publish
2026.09.19
Author
Leo (Junha) Jang
2년 전만 해도 AI가 만든 콘텐츠는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손가락은 여섯 개였고, 간판의 글씨는 외계어였으며, 조명은 플라스틱처럼 번들거렸습니다. 우리는 그런 결과물을 ‘AI 슬롭(쓰레기)’이라 부르며 웃었습니다.
(AI 비디오 생성 기술의 발전을 잘 보여주는 윌 스미스의 스파게티 먹방)
하지만 어느 순간 달라졌죠. 사람의 작업과 구별하기 어려운 이미지와 영상은 물론, 게임과 서비스까지 만들 수 있어졌습니다. AI는 놀라운 속도로 결과물의 수준을 끌어올렸습니다.
그렇다면 그다음에는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모든 결과물이 상향 평준화된 미래는 어떻게 될까요?
지금까지 AI가 한 일은 상방을 열기보다 하방을 끌어올리는 일이었습니다. 한때 실력을 증명하던 요소들, 이를테면 잘 잡힌 히어로 이미지와 그리드, 분위기 있는 사진은 이제 기본값이 되었습니다.
기본값에는 누구도 값을 지불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상향 평준화의 첫 번째 역설입니다. 모두의 결과물이 좋아지는 것이 아니라, ‘좋다’는 평가 자체가 아무 의미도 갖지 못하게 됩니다.
흔히 AI의 성능이 좋아질수록 특유의 슬롭(쓰레기) 느낌도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오히려 반대입니다.
2026년 1월 발표된 한 논문은 슬롭을 정확히 정의하기 어렵다고 인정하면서도 세 가지 원형적 속성을 제시했습니다. 표면적 유능함, 비대칭적 노력, 대량 생산 가능성 (Why Slop Matters / 앨런 튜링 연구소 등)
여기서 중요한 점은 슬롭의 정의에 애초부터 ‘못 만들었다’는 조건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뉴욕타임스의 한 기자는 슬롭을 돼지 사료에 비유했습니다. 사료의 목표가 최소 비용으로 영양 섭취를 극대화하는 것이라면, 슬롭의 목표는 최소 비용으로 소비 시간을 극대화하는 것이라는 설명입니다. 내용보다 중요한 것은 당신이 그것을 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상향 평준화의 끝에 슬롭의 종말은 없습니다. 오직 ‘잘 만든 슬롭’이 있을 뿐입니다. 못 만든 슬롭은 3초 만에 걸러낼 수 있지만, 잘 만든 슬롭은 끝까지 소비한 뒤에야 그 안에 아무것도 없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합니다.
사실 더 큰 문제는 결과물이 아니라 판단입니다.
우리가 모든 의사결정에 AI를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판단마저 비슷해집니다. LLM은 사용자가 선호할 법한 답을 추론하도록 훈련됩니다. 낯설고 위험한 답보다 안전하고 그럴듯한 답을 내놓는 데 능숙합니다.
결과물이 평준화되면 사람들은 모두 같은 결론에 도달합니다. 폴 그레이엄도, 마크 안드레센도, 수많은 뉴스레터도 “이제 취향이 해자다.”라는 말을 반복합니다. 모두가 같은 AI를 쓴다면 승부는 최고의 기술이 아니라 최고의 안목에서 갈린다는 주장입니다.
그러나 2026년 3월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실린 ‘연구자들이 LLM에 전략 조언을 구했더니 트렌드슬롭이 돌아왔다’는 연구는 다른 현실을 보여줍니다.
연구진은 7개 주요 모델을 1만 5,000회 이상 시뮬레이션했습니다. 일반적 상황과 구체적 상황을 나누고, 질문의 프레이밍을 바꾸고, 양자택일형과 개방형 질문을 각각 던졌습니다. 그 결과 일곱 가지 전략적 긴장 가운데 여섯 가지에서 모델의 답변이 한쪽으로 강하게 쏠렸습니다. 거의 언제나 문화적으로 유행하고 사회적으로 바람직해 보이는 방향이었습니다.
그 여섯 가지 가운데 하나는 ‘차별화 대 상품화’였습니다.
모두가 같은 모델에 “어떻게 차별화해야 하는가”라고 묻고, 모두가 같은 답을 받고 있습니다.
1단계에서는 결과물이 같아졌습니다. 2단계에서는 결정이 같아집니다.
결정의 평준화는 결과물의 평준화보다 위험합니다. 결정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포트폴리오를 열어도, 피드를 스크롤해도 드러나지 않습니다. 3년 뒤 모두가 같은 시장에서 같은 포지션을 차지하기 위해 정면충돌할 때에야 비로소 알게 됩니다.
‘취향이 해자’라는 주장도 예외가 아닙니다. 과거에 좋은 취향을 지켜준 것은 취향 그 자체가 아니라 구현의 어려움이었습니다. 누군가 따라오는 데 몇 달이 걸렸고, 그 시차가 해자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스크린샷 한 장과 프롬프트만으로 복제할 수 있습니다. 기술적 진입장벽이 0에 가까워지면 미적 진입장벽도 곧 무너집니다.
온 인터넷이 한목소리로 취향이 해자라고 외치는 현상 자체가 이미 판단의 평준화를 증명합니다.
그렇다면 누가 돈을 벌게 될까요. 과거의 음악 산업은 이미 이 질문을 먼저 겪었습니다.
디지털화 이후의 음악 산업을 분석한 연구들은 다음과 같이 정리합니다. 1999년 정점 이후 음반 산업의 매출은 크게 줄었지만, 발매되는 곡과 신인 아티스트의 수는 역사상 가장 많아졌습니다. 구매 건수도 늘었고, 곡의 품질 역시 격변 이전보다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품질은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중간값 창작자의 수입은 줄었습니다.
이 산업에서 ‘결과물을 어떻게 차별화할 것인가’는 애초부터 진짜 승부처가 아니었습니다. 가치는 만드는 쪽에서 고르는 쪽으로 이동했습니다. 플레이리스트로, 추천 알고리즘으로, 발견의 관문을 장악한 플랫폼으로 넘어갔습니다.
2005년 이후 여덟 개 산업의 민주화 사례를 분석한 연구자는 이 지점을 냉정하게 짚습니다. 중간값 산출물의 질이 떨어졌을 뿐 아니라, 중간값 생산자의 수입도 과거 게이트키퍼 체제보다 줄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이를 민주화라고 부르기 어렵다고 말합니다. 진입 고정비용만 낮아진 슈퍼스타 경제에 더 가깝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질문을 던집니다. 사라진 게이트키퍼는 어디에서 다시 만들어지는가.
선례가 가리키는 답은 생산 단계도, 발행 단계도 아닙니다. 발견(discovery) 단계입니다.
인쇄술은 정보를 풍부하게 만들어 주의를 희소하게 했습니다. 인터넷은 유통을 풍부하게 만들어 신뢰를 희소하게 했습니다. AI는 창작을 풍부하게 만들어 판단을 희소하게 합니다. 희소성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단지 옆으로 이동할 뿐입니다.
AI가 만드는 미래는 모두가 중간, 혹은 중간 이상이 되는 세상이 아닙니다. 오히려 중간이 사라지는 세상에 가깝습니다.
결과물의 99%는 대체 가능한 AI 슬롭이 되고, 나머지 1%만이 정말로 다른 무언가가 될 것입니다.
사진이 대중화됐을 때 모두가 예술가가 된 것은 아닙니다. 돈을 번 쪽은 코닥이었습니다. 음악이 무한해졌을 때 힘을 얻은 것은 아티스트가 아니라 플레이리스트였습니다. 이번에도 같은 일이 벌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요즘은 AI를 잘 써야 살아남는다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당장은 맞습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아예 정반대일 수 있습니다.
모두가 AI를 잘 쓰게 되는 순간, AI를 잘 쓰는 능력에는 더 이상 가치가 남지 않습니다. 그때 살아남는 사람은 적어도 가장 능숙하게 생성하는 사람이 아닐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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